거울 속 내 얼굴에서 예전엔 없던 주름과 푹 꺼진 라인을 발견하고 나도 모르게 한숨 쉬어본 적 있니? 혹은 남들이 볼까 봐 보정 어플 없이는 사진 한 장 올리는 게 두려워진 자신을 보며 서글퍼진 적은 없었어?

최근 방송인 홍진경 님이 딸 라엘이에게 보낸 문자가 큰 화제였지. 보정 어플로 얼굴을 바꾼 딸에게 “사각턱이면 어떠냐, 네 생얼 자체로 살아라”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모습 말이야. 그 대화를 보며 웃음이 나다가도, 40대인 나는 가슴 한구석이 찌릿하더라고. 치유 글쓰기 800편을 쓰고 상담심리를 전공하는 나조차도 사실 거울 앞에서는 매일 흔들리는 평범한 사람이거든.

내 민낯을 가둔 타인들의 무례한 목소리
사실 나는 5년 전까지만 해도 쌩얼 브이로그를 올릴 만큼 용기 있는 사람이었어. 그때 영상을 찍으며 내가 가장 깊게 성찰했던 건, 내 무의식 속에 뿌리 깊게 박힌 수치심의 정체였지. 어린 시절부터 “못생겼다”고 놀리던 엄마, “옥상에서 떨어진 메주 같다”며 웃던 외삼촌, 그리고 20대 때 내 민낯을 보며 “화장한 거랑 많이 다르네”라고 했던 남자친구까지.
커서 보니 나는 결코 못난 외모가 아니었어. 단지 자존감이 낮았던 주변 사람들이 자기들의 빈 공간을 채우려고, 어린아이였던 나를 깎아내리며 우월감을 느끼려 했던 것뿐이더라고. “나는 부족하고 못났어”라는 생각은 내가 만든 게 아니라, 그들의 미성숙함이 나에게 던진 가시 돋친 말들이었을 뿐이야. 그 사실을 깨닫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타인이 만든 감옥에서 걸어 나올 수 있었어.
라엘이의 고백 “이렇게라도 멘탈을 지켜야 해요”
라엘이가 홍진경 님에게 “인간승리로라도 멘탈을 지켜야 한다”며 보정 사진을 옹호했던 그 말, 그게 비단 어린아이만의 이야기일까? 40대인 내가 필터 속에 숨고 싶고, 피부과 시술을 고민하는 것도 어쩌면 세상이 던진 무례한 시선으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한 나만의 비명일지도 몰라.
하지만 홍진경 님은 아주 성숙한 방식으로 딸의 자존감을 붙잡아줬어. 가면을 두껍게 쓴다고 해서 멘탈이 지켜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내 사각턱을, 내 주름을 “이게 나야”라고 쿨하게 받아들일 때 진짜 단단한 자존감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거지.

가면 뒤에 숨지 않아도 당신은 충분히 가치 있어요
상담심리를 공부하며 배우는 가장 큰 치유는 바로 자기 수용이야. 노화는 무언가를 잃어가는 과정이 아니라, 내가 살아온 세월이 내 얼굴에 고유한 지도를 그려 나가는 과정이지. 이제는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40대의 내가 가진 깊이와 편안함을 더 사랑해주고 싶어.
물론 당장 내일 쌩얼로 카메라 앞에 서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거야. 하지만 적어도 거울을 볼 때 볼품없다고 자책하기보다는 “이만큼 치열하게 살아내느라 수고했다”고 다독여주기로 했어. 그리고 이제는 그 빈자리를 타인의 평가가 아닌, “나 너무 예뻐, 사랑스러워”라는 나의 목소리로 채워가고 있어.

치유의 글을 800편이나 썼지만, 나 역시 여전히 외모의 변화 앞에 흔들리는 연약한 인간이야. 하지만 그 흔들림조차 글로 쏟아내고 인정하는 순간, 마음의 근육은 조금씩 더 단단해지더라고.
혹시 너희도 거울 속 변해버린 모습 때문에 속상해하고 있니? 홍진경 님이 라엘이에게 준 그 사랑의 일침을 우리 스스로에게도 건네보자. “주름 좀 있으면 어때? 조금 칙칙하면 어때? 그게 지금의 너인걸. 너는 존재 자체로 충분히 귀하단다.”
오늘 하루는 필터 없는 너의 진짜 삶을 더 많이 안아주길 바라. 내일은 좀 더 가벼워진 마음으로 다시 만나자, 안녕!

